teamALIM 행복한성공 이야기

처칠에게서 배우는 리더십의 기술

2016. 12. 16. 07:30 - teamALIM

처칠에게서 배우는 리더십의 기술



1. 비전을 제시하는 지도자
히틀러와 처칠은 끈기 있게 비전을 추구한 끝에 추종자를 얻을 수 있었다. 비전의 제시는 리더십의 절대 요소이다. 특히 히틀러와 처칠처럼 지도자가 역경에 굴하지 않고 비전을 지켰을 경우 그 영향력은 더욱 커진다. 지도자는 대중이 진심으로 동일시할 수 있는 공동의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당시 처칠의 비전은 문명화된 가치 위에 강력한 대영제국을 건설하는 일이었다. 이에 비해 히틀러의 비전은 비현실적이고 사악했지만 그 시대 독일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히틀러는 부정적인 공격 대상을 주입시켜 국민들에게 적개심을 불러일으켰고, 그것을 이용해 더 높이 도약할 수 있었다.

2. 지도자의 카리스마
히틀러는 정치적 성공과 더불어 스스로 숭배의 대상이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 카리스마를 갖게 되었다. 다시 말해 히틀러는 완전무결한 초인의 이미지를 교묘하게 가꾸었고, 마침내 사람들로부터 그 터무니없는 과대망상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예컨대 그는 초인적 이미지를 해친다는 이유로 심각한근시였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안경을 쓰지 않았다. 카리스마로 똘똘 뭉친 히틀러에 비해 처칠은 카리스마로 오해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것이 카리스마는 아니었다. 우리가 은연중 지도자에게 기대하는 카리스마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히틀러의 강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의 원동력은 권력욕이었다. 그러나 처칠은 지도자가 국민들을 감화시키는 데 있어 반드시 카리스마나 강력한 권력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것을 입증했다. 히틀러를 만난 독일 국민들은 그가 무엇이든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그러나 처칠을 만난 사람들은 스스로 무엇이든 성취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진정한 영감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카리스마를 능가하는 법이다.”

3. 위임하는 지도자, 간섭하는 지도자
히틀러는 정치나 행정의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고, 자신이 전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나면 나머지는 부하들끼리 치고받으며 꾸려나가게 내버려두었다. 그는 아랫사람들 간에 경쟁을 부추겨 마찰을 일으키는 등 서로 간에 적개심이 들끓도록 휘저어놓았다. 선전장관 괴벨스, 외무장관 리벤트로프, 친위대 대장 하인리히 힘러, 건축장관 알베르트 슈피어는 총통에게 각각 다른 보고를 했다. 얼핏 보면 매우 우스꽝스런 상황이지만 히틀러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적합했다. 적대적 파벌 사이에서 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함으로써 저절로 권위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한 해군 장교는 일기장에 이런 글을 남겼다. “윈스턴 처칠은 수병들의 업무까지 관심을 갖고 참견하는 대단한 사람이다. 물론 재능이 특이하고 놀랄 만큼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만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럼에도 처칠의 부하나 동료들은 그의 에너지와 강한 실천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런 간섭을 그런대로 참고 견뎠다. 처칠의 정력적인 리더십은 그의 결점과 실수를 보상하고도 남았다.

4. 생산적인 긴장관계를 조성하는 지도자: 지도자와 참모
처칠은 육군 원수 앨런브룩과 전략상 문제로 인해 자주 의견 충돌을 일으켰다. 하지만 처칠은 자신의 의견이 앨런브룩과 달라도 그를 결코 권력으로 제압하지 않았다. 갈리폴리 전투에서 뼈아픈 실패를 경험한 탓에, 자신의 충동적인 천재성보다는 앨런브룩의 논리적인 주장을 믿고 따르는 편이 낫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앨런브룩은 처칠이 제2의 갈리폴리 실패를 맛보지 않도록 막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여겼다. 두 사람의 생산적인 긴장 관계는 처칠의 천재성과 앨런브룩의 열정이 결합된 위대한 군사 작전을 통해 영국에 유리하게 작용하여 2차 세계대전 승리의 쌍두마차와 같은 역할을 하기에 이르렀다

5. 옥석을 가릴 줄 아는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라면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에 못지않게 적합하지 않은 인재는 과감히 제거할 줄도 알아야 한다. 처칠은 자신이 임명한 사람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도 무자비하게 대했다. 예컨대 처칠은 총리가 되자 오랜 친구이자 정치적 동료인 밥 부드비를 식품부 차관에 임명했다. 그러나 얼마 후 부드비가 추문에 연루되자 처칠은 옛 친구를 불명예 퇴진시켰다. 개인적인 친분보다 정부의 입장을 우선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6. 책임을 인정하는 지도자
지도자는 책임을 져야 한다. 모든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때도 처칠은 순순히 자신의 책임을 인정했다.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비난의 화살을 받아들이는 데 도가 통해 있었다.
그는 저서 <나의 반생>에서 당시의 소감을 이렇게 술회했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비난의 돌을 던졌다. 그들은 거의 언제나 그랬다. 아마 내가 그 돌을 맞아도 잘 견뎌낼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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